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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는 어떤 사람이 멋져보이나요?

평균의 파도 앞에서 버티게 해주는 질문

조직의 정체성은 "그 조직에서는 어떤 사람이 멋있어보이냐"가 결정한다. "우리 조직에서 어떤 유형의 사람들을 멋져보이게끔 조명할 것인가" 하는 운영진의 의사결정은 그만큼 중차대한 고민이다. 운영진은 자신들이 이끄는 조직이 어떤 부류의 조직이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이러한 경험 설계 과정에서 꼼꼼하게 녹여낸다. 예컨대 인디밴드에서는 상업적 니즈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들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독창적인 스타일로 풀어내는 사람이 멋져보여야 한다. 스타트업에서는 계속 실패하더라도 의미와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멋져보여야 하고, 창업 네트워크에서는 주변의 유혹과 압박 및 의심의 눈초리 등등을 견디면서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이 멋져보여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조직의 분위기에는 관성이 생기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굴리기 어려운 공일수록 그 관성 또한 쉽게 사라지는 듯하다. 세상에는 유혹적인 가치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창업 동아리 운영할 때 아무리 애를 쓰고 용을 써가며 창업가가 멋져보이는 분위기를 만들어놔도, 소위 말하는 "네카라쿠배당토 n년차" 현업자가 어디선가 짠 하고 나타나서는 자기 커리어가 어쩌니 자기 회사가 저쩌니 떠들어대기 시작하면 창업동아리로서 응당 추구해야 할 분위기 따위는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광경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애초에 200여 명의 부원들이 전부 창업을 꿈꾸(기는 커녕 대부분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떠안고 사는 20대 초중반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좋은 회사 명함 너머로는 후광이 번쩍여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 더욱 심했던 것 같다. 일단 명색이 창업 동아리니까 내가 믿는 창업가 정신을 전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있는 인맥 없는 인맥 긁어모아 창업자들 초빙하고. 스타트업 초기멤버 부르고. VC 멘토링 붙이고 등등등.. 노력은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앞에서 옆에서 방해만 받다보니 결과까지 성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스타트업에서 오퍼 받았을 때의 일이다. 대표가 요즘 어떤 생각 하냐고 물어보길래, 주변에 창업 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나름의 방식들로 취업(준비)에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이 적잖이 짜증난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내 말을 들은 대표는 공감이 된다면서 그래서 사람은 닮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야하는 거라고, 이 회사에는 - 특히 자신이 지금 제안하는 직무 부서에는 - 이미 창업을 했던 / 앞으로도 무조건 창업을 할 사람들만 모여있기 때문에 그런 걱정 없을 거라고 말하더라. 내가 제안받았던 직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종류의 일을 다 해야 한다는, 생전 처음 보는 직무였다. 이 신기한 직무는 이제는 더 이상 그 회사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직무로 일했던 퇴사자들 대부분이 각자의 회사 차렸다는 소식을 나중에 전해들었을 때 그 대표의 자랑이 정말 사실이기는 했군 하고 떠올렸다. 사람은 자신이 닮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라는 말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조직의 구성원 수든, 자주 만나는 사람의 수든, 표본 수가 늘어나면 금방 평균(즉, 사회의 일반적 시선에서 멋져보이는 가치들을 추구하게 되는 경향)을 향해서 회귀한다. 기준이 뭐든간에 분산의 크기만 다를뿐 정규분포를 따르게 돼있다. 자연의 섭리니까 당연하겠지. 만약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평균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라면, 평균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온힘을 다해서 굳건히 버티고 서있지 않는 이상 평균의 파도에 금방 휩쓸려버린다. 사람들에게 그 굳건히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는 어떤 사람이 멋져보이는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요즈음은 많이 느낀다. 어떤 사람들이 한번 멋져보이기 시작하면, 그리고 같은 생각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엄청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건 비단 조직 레이어에서뿐만 아니라,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친구들/가족들 레이어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지금 어떤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나, 어떤 사람을 닮고 싶어하고 있나... 앞으로 내가 어디에 있게 되든 한번씩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지금 어떤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