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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성

말보다 말한 사람을 보게 되는 이유

세상 돌아가는 게 참 비합리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내리는 결론이 정말 정답인지 아니면 적어도 정답에 가까울 수 있는 과정을 가졌는지에 대해 깊이 검토하지 않는다. 유명한 사람이 하는 언행이면 좋다고 박수치고, 성공한 회사가 시도하는 방식이라면 역시 다르다며 치켜세워준다. 말 속의 가치를 곱씹기보다는 말한 사람의 배경과 권위와 목소리 크기에 의지한다. 권위에의 호소가 논리적 오류의 대표적인 일종이라는 사실을 학교에서 아무리 배워봤자 소용없는 것 같다. 뭔가 말해보려 하면 바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공격이 들어온다. 니가 뭔데, 라며.

생각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몇 어절 사이에 숨어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말 영양가 있는 말인 건지 애초에 그게 정말 사실이기는 한지 ㅡ 고민하다보면 소중한 자원들을 정말 많이 쓰게 된다. 시간이든 에너지든 감정이든. 인지부조화도 많이 온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을 이어가다보면 단순한 견해는 물론이고 자신이 평생동안 정답으로 믿고 살아왔던 가치까지 져버려야 할 무거운 순간들을 마주하곤 한다.

사람들은 그런 순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일정 수준에서 생각을 멈추고 합리화를 시작한다. 그냥 쉽게 눈에 보이는 이유를 어떻게든 찾아낸다. 사람이나 조직의 배경, 권위, 유명세, 그동안의 실적, 수사(레토릭), 이런 것들이 눈에 가장 먼저 띈다. 그러다보니 이런 말들이 나온다. 니가 뭔데. 너는 얼마나 아는데/하는데. 니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느냐.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판단이 휴리스틱이다. 단기적인 자원 효율을 위해 리콜(민감도; 실제로 참인 것 중 참이라고 판단한 것의 비율)을 희생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만한 비효율이 없는데도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달콤한 편안함을 선택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불평하기 부끄러운 것은 ㅡ물론 피해를 더 자주 보는 것 같지만ㅡ 나도 이따금씩 그 덕택을 보고는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제안하는 내용에 많은 허점들이 보일 것 같은데, 학교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누구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회사 어느 직무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종종 무한에 가까운 지지를 얻곤 한다. 그냥 신뢰만 얻는 거라면 애써 눈이라도 질끈 감겠으나 돈까지 받을 때는 내가 정말 이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건가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인터넷이 열리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소식도 휴대폰 스크롤만으로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은 이미 20년 가까이 된 일이다. 사람들이 말하길 정보의 격차가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한참 먼 것 같다. 아니다, 한참 멀었다고 표현하는 것에는 어폐가 있을 수 있겠다. 합리적인 판단을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이 갖추어졌는데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애초에 여기서 더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합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아무리 좇아도 근처에조차 도달할 수 없는 파랑새 같은 관념일지 모른다.